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으며 제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한국전쟁과 산업화 시대를 거쳐 오신 우리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가, 이토록 세밀하게 기록될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단순한 가족사를 넘어 대한민국 현대사의 축소판이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시대의 기록이었습니다. 작가는 아버지가 남긴 일기를 토대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복원해냈고,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 부모님 세대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가족의 역사를 통해 보는 우리의 현대사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1940년대 해방 전후부터 1980년대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일기를 토대로, 한 가족의 역사를 세밀하게 그려냈습니다. 해방 직후의 혼란스러운 시기를 살아가는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기쁨도 잠시, 이념 갈등과 분단이라는 또 다른 시련이 찾아오는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우리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할아버지께서도 비슷한 시기에 월남하셨다고 합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 언젠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임시로 내려오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임시'가 평생이 되어버린 것이죠. 책 속 주인공 가족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해방 직후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보통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혼란스러운 현실이었습니다. 일본어를 쓰다가 하루아침에 한글로 바뀌고, 학교 교육과정도 크게 바뀌는 등 일상의 급격한 변화는 많은 이들에게 큰 혼란을 주었습니다. 게다가 좌우익의 대립이 심해지면서 이웃 간의 반목과 갈등도 깊어졌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작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아버지 세대가 겪은 격동의 시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급격한 산업화 시기를 겪은 아버지 세대의 모습이었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맨손으로 일어나 고도성장을 이룩한 그 시대의 이야기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닌 우리의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였습니다. 작가는 아버지의 일기를 통해 그 시대를 살아간 보통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섬세하게 포착해냈습니다. 특히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의 격변기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줍니다. 농촌에서 도시로의 대규모 인구 이동, 새로운 공장들의 건설, 달라지는 생활양식 등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이러한 변화의 한가운데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야근과 주말 근무는 일상이었고, 열악한 근무 환경 속에서도 자녀 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모습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더불어 당시의 사회상도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봉급날이면 으레 있었던 술자리 문화, 회사와 개인의 경계가 모호했던 조직 문화,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생활고 등 우리 부모님 세대가 겪었던 힘든 시기가 상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현재 한국 사회의 많은 특징들이 이 시기에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대 간 갈등과 이해의 순간들
책에서 다루는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세대 간의 갈등입니다. 해방 이후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부모 세대와, 민주화와 함께 성장한 자녀 세대 사이의 간극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갈등을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그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성장하는 과정으로 그려냈습니다. 특히 1980년대의 민주화 운동 시기는 세대 간 갈등이 가장 첨예했던 시기로 그려집니다. 생존과 안정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부모 세대와, 정의와 자유를 추구하는 자녀 세대의 가치관 충돌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갈등의 이면에 있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도 놓치지 않고 포착합니다. 더불어 교육관의 차이, 결혼관의 변화, 직업 선택을 둘러싼 갈등 등 일상적인 측면에서의 세대 차이도 세밀하게 그려냅니다. 예를 들어, 자녀들의 대학 진학과 직업 선택을 둘러싼 갈등에서 부모 세대의 안정 지향적 가치관과 자녀 세대의 자아실현 욕구가 충돌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행 중인 세대 간 갈등의 뿌리를 이해하게 해줍니다.
현대사의 산 증인으로서의 기록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가장 큰 의의는 우리 현대사의 생생한 증언록이라는 점입니다.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는, 보통 사람들의 삶과 고민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시적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인의 삶이 어떻게 영향을 받고 변화해 갔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이 책의 가치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나열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을 섬세하게 포착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해방 직후의 기쁨과 혼란, 전쟁 중의 공포와 상실감, 산업화 과정에서의 희망과 좌절, 민주화 시기의 갈등과 화해 등이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과거의 모습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많은 사회적 갈등의 뿌리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텍스트입니다. 이념 갈등, 세대 갈등, 빈부 격차 등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의 기원을 이 책을 통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우리 부모님 세대가 겪었던 고난과 극복의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감사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요약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한 가족의 역사를 통해 대한민국 현대사를 조명한 귀중한 기록입니다. 해방 이후부터 격동의 산업화 시대를 거쳐온 아버지 세대의 삶과, 그 속에서 벌어진 세대 간의 갈등과 화해의 순간들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 책은 단순한 개인의 기록을 넘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자 현재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특히 현대 한국 사회의 여러 특징들이 형성된 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며, 세대 간 갈등의 근원과 해결의 실마리도 제시해줍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를 성찰하며,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